기분(우울/조울) 불안&스트레스(공황/PTSD)
당신의 삶이 흔들리고 있다면
송진순 교수
2026.04.09
당신의 삶이 흔들리고 있다면,
저는 운전하면서 라디오를 즐겨듣습니다. 며칠 전에도 평소처럼 ‘그대 창가의 알렉스입니다’를 듣고 있었습니다. 한 청취자가 사연을 보내왔습니다. “오늘 우리 아이가 콩쿠르 대회에 나갑니다. 첫 무대인데 떨지 않고 잘하라고 응원해 주세요.” 응당 라디오 DJ는 용기 주는 말을 하겠거니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DJ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어머니, 첫 무대인데 당연히 떨리죠. 떠는 게 정상이에요. 아이가 떨면서 연주하면 영상으로 담아주세요. 그리고 연주 끝나고 아이랑 같이 보면서 이렇게 말해 주세요. ‘오늘 너 정말 잘했어. 좀 떨었지만, 다른 애들은 더 떨더라. 여기도 틀리고, 그래도 넌 오늘 최고였어.’ 아이에게 마음껏 칭찬해 주세요.” 그러면서 웃으며 덧붙였습니다. “하하하, 저희가 좀 현실을 직시하는 방송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묘하게 긴장했던 마음 한 구석이 해소되는 듯했습니다. 우리는 왜 이 쉬운 말을 하지 못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말은 단순한 위로나 입에 발린 응원이 아닙니다. 인간의 조건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때로 떨리기도 하고,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니 자신의 이러한 모습을 받아들이기고, 이것 역시 참고 기다려줄 필요도 있다는 것이지요.
일전에 의대 수업에서 ‘나는 얼마나 독립적인가’라는 주제를 두고 조별 토론을 했습니다. 그때 한 학생이 그러더군요, “청년들에게는 실패할 기회가 없는 것 같아. 한 번의 실패가 너무 크니까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써야 해. 취업은 인정받는 길을 선택하고, 연애도 안전한 길로 가야 하잖아,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 같아.” 그 말에 모두 수긍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우리에게는 실패할 기회가 없다.” 이제 막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우리는 청년들에게 말합니다. “실패해도 괜찮아, 넘어질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지” 하지만 우리 사회는 실패와 낙오를 참아줄 만큼 포용적이지 않습니다. 실패하면 낙오자가 되고, 흔들리면 문제 있는 사람이 되고, 약해지면 그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이 됩니다. 우리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쓰며 살아갑니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단단한 외피를 두르고, 사회가 정한 기준에 맞춰 세상에 자신을 노출합니다.
1941년, 가톨릭 영성가인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은 워싱턴을 바라보며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곳은 광야의 도시다. 허상으로 가득하고 소음을 생산하는 기계가 된 도시, 광기로 가득한 도시.” 그는 도시에서 욕망과 자극에 끌려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과 피폐한 도시의 삶을 냉소했습니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에 대한 성찰도, 세상에 대한 사유도 잃어버린 채, 이끌려 살아가는 존재 말입니다. 80년이 지난 지금, 우리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성과와 경쟁이 삶의 기준이 되고, 자신을 하나의 프로젝트처럼 관리하며, AI와 경쟁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사회, 우리는 여기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실패할 기회가 없습니다.
하지만, 원래 인간은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기도 합니다. 낯선 무대에서 떨기도 하고, 두려워 멈춰서기도 합니다. 삶은 원래 흔들리고 넘어지는 것입니다. 흔들리기 때문에 다른 사람 손도 잡고, 떨면서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넘어지는 삶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 넘어질 수 없는 삶이 위험한 것입니다. 넘어질 수 없는 사람은 결국 다른 길을 시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혹시 지금 당신의 삶이 흔들리고 있다면 그것은 실패의 신호도 불안의 징조도 아닙니다. 자신의 삶을 향해 진지하게 걸어가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저자 소개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강의하고 한신대학교 겸임교수로 활동하며 한국교회환경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기후위기, 젠더, 사회정의를 중심으로 종교와 사회를 잇는 인문학적 비판과 공공적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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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순 교수
한국교회환경연구소장